집필자 : 차경애(한국YWCA연합회 명예연합위원), 배정미(한국YWCA연합회 실무활동가)

새로운 직종개발로 여성노동자의 근로 환경 개선과 권리 확보에 기여

YWCA의 여성직업개발 사업은 시대적 변천과 여성들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직종과 직업에 대한 고질적인 성차별의 개념을 불식시키는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저소득층 여성들이 부딪힌 현실문제에 적절하고도 합리적으로 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YWCA의 공신력과 사회적인 이미지를 높이는데도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직업개발 사업은 YWCA의 특별한 업적으로 손꼽히는 부분으로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권 사각지대에서 여성의 직업영역을 공적으로 인정받아 여성의 경제활동과 직업의식을 높이면서 여성의 권익옹호에 기여했다.

 

▲ 여성의 새로운 직업개발 위한 조사 보고서 발간: 극심한 남녀차별 실태 확인

한국YWCA는 1973년부터 중점적으로 전개한 야간학교, 각종 직업 의식화 강연과 함께 직업기술훈련을 실시하였고 근로여성들의 저임금, 취업기회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타개책으로 새로운 직종개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75년 ‘세계 여성의 해’를 계기로 여성의 능력을 세계적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삼고자 한 것이다. 한국YWCA는 1975년 미국 국제개발처(AID,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로부터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 여성들의 직업현황과 ‘새로운 여성직업’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전국에 산재한 공공직업훈련소와 지역YWCA의 직업훈련소, 인정직업훈련소를 대상으로 훈련기준, 자격과 국가규정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의 노동력이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전문직과 기능직에는 남녀의 차이가 심하고 여성들은 단순노동에 치중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들은 주로 미싱(재봉틀), 봉제, 양재, 자수, 기계자수 등 전통적인 14종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으며 남녀가 다같이 훈련을 받는 직종은 무선통신, 텔레타이프 등 9종에 불과한데 비해 남성의 직종은 33종이나 되었다. 남녀가 다같이 훈련을 받은 직종에서도 여성은 1~2명 정도가 구색으로 끼어 있었다.

또한 여성이 다양한 직종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사회적 통념이 강하게 뿌리내려 있는데다 ‘여성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사고방식으로 훈련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제한 속에서 여성 자신들도 직업관이 불투명해 직업에 대한 긍지나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한국YWCA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직종을 정리해 1976년 ‘여성의 새로운 직업-직업훈련소 순회를 중심으로’란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는 경제성장으로 직업분야가 확장되고 기능 인력이 요구되는 시대를 맞아 근로여성의 취업기회 확대와 처우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한국YWCA의 여성직업개발사업(Better Jobs for Women)은 지금까지 여성의 직업에 속하지 않았던 도배, 타일, 페인트 등 3개 분야를 새로운 훈련영역으로 선정했다. 이 분야는 당시만 해도 "남자들이나 하는 일”로 간주되었지만 노동시장의 수요가 많고 여성의 고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직종이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 1977년 한국 최초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운동’의 첫걸음을 내딛다

여성이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능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훈련을 철저히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YWCA 특별사업 중의 하나인 ‘직업개발’은 미국 국제개발처(AID)로부터 5천5백여만원의 보조를 받아 지역YWCA에서 진행되었다. 훈련대상은 18개 지역YWCA로부터 추천받은 여성들 중 결혼여부와 관계없이 생활수준이 낮고 어려운 사람, 실업자, 저소득 근로여성, 17~45세 여성을 선발기준으로 삼았다. 이들 중 가계의 책임을 지고 있는 여성가장이 33%였고, 학력은 수료생 절반이 고졸, 다음이 중졸, 초등 졸이었으며 간혹 대졸도 있었다. 교육비와 숙식비는 무료로 하면서 훈련기간 동안 합숙생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1978년 2월 도배, 타일, 페인트분야에 대한 여성의 새로운 직업훈련 계획이 발표되면서 광주YWCA와 서울YWCA에서 시작된 ‘제1차 직업개발 프로그램’에는 광주․군산․대구․대전․마산․목포․부산․서울․원주․인천․전주․조치원․청주․춘천YWCA 등에서 훈련생을 추천하였다. 그 결과 서울에서만 50명 모집에 269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수료생 수는 도배 300명, 타일 116명, 페인트 162명 등 총 578명이었다. 합숙장소로 광주YWCA에서는 기숙사 시설이 있는 계명여사에서, 서울YWCA에서는 독산동 근로여성회관을 선정해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450시간의 이론과 실습 교육을 실시했다. 훈련내용에는 노동부가 정한 기능사보 훈련과정과 YWCA가 독자적으로 마련한 일반 교양강좌가 포함되었다. 연도별 수료생은 1978년에 17명, 1979년 182명, 1980년 225명 등 총 424명, 업종별로는 1980년까지 도배훈련 300명(3개월), 페인트훈련 150명(6개월), 타일훈련 150명(6개월)등 총 600명이었다.

1978년 1차 도배훈련 총 97명의 수료생중 80%인 68명이 서울YWCA 독산동 근로여성회관에 소속돼 취업전선에 나섰고, 사회의 호응도 대단히 컸다. 수입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고, 남성과의 임금격차도 전에 비해 많이 좁혀졌다. 건축현장에서의 남녀간의 임금 격차(1977년 9월 기준)를 보면, 타일의 경우 남자 8천원에 여성은 1/4에 해당하는 2천원, 페인트는 남자 5천원에 여자 2천5백원으로 2~4배 이상 심하게 차이가 났다.

그러나 직업훈련 후 도배, 타일, 페인트 세 분야는 남녀가 똑같이 1만원을 받게 되었다. 훈련 전에 비해 임금이 2~5배까지 높아진 것이다. 훈련 전 조사 시 도배, 타일, 페인트 분야를 ‘남성 전용직종’으로 생각한 사람이 300명 중 232명이 되었으나 훈련 후에 실사한 조사에서는 ‘남성만의 직업으로 생각한다’는 사람이 7명에 불과해 꼼꼼하게 손이 가는 도배는 여성들이 더 잘 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신문들은 ‘여성근로자 대책의 차원’,‘여성기능의 새 개발-YWCA의 참신한 착상을 보고’, ‘건축토목, 기능직, 기술훈련 계획’등 제하의 사설을 싣고 여성의 새 직종개발을 크게 독려했다.

직업개발을 할 때마다 당면하는 과제가 인정직업훈련소 인가였고, 인가받는 기준과 절차가 매우 엄격했다. 그러나 여성의 직업분야를 새롭게 개척하는 시점에서 YWCA가 당시 인정직업훈련소 인가를 받게 된 것은 YWCA의 직업훈련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도배공 훈련에 대한 신문기사 스크랩

도배공 훈련에 대한 신문기사 스크랩

▲ 새로운 직종-도배 훈련

1977년 9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마산YWCA가 도배훈련을 시작, 도배가 남성 전용 직업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마산YWCA는 20~30대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매달 10일간 직업여성의 자세, 실내장식, 도배지 선택법과 재단법을 가르치고 회원들의 가정을 실습 장소로 사용하게 했다. 도배훈련에는 평균 12~15명 정도가 신청했고, 4회에 걸쳐 63명을 훈련, 그중 42명이 수료했다. 1978년에는 6회에 걸쳐 62명이 수료했는데 바로 직전 해에 수료한 도배공이 실습 강사가 되어 차기 도배공을 훈련시켰다.

YWCA는 계속해서 감귤 전정 기술과 표구, 제도, 목공예, 간판 등의 직종으로 직업훈련을 확대해 갔다. 이 외에 사회의 변천에 따른 직업개발로는 피부관리사, 호텔미화부, 탁아모, 장신구 디자이너, 판매사, 비서, 전문음식점 경영 훈련이 있다. 1966년부터 지금까지 전개해온 종래의 파출부 훈련과 요리사, 환자 돕는 이 훈련은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 성차(性差) 극복 위한 여성 적합 17개 직종 개발

노동현장의 성차(性差)를 좁히려는 YWCA의 노력은 1980년대~1990년에 이르러 다양한 직종개발로 여성취업의 문을 확대해 놓았다. 그 전까지는 전체 여성취업자의 절대다수인 67%가 5인 미만의 소규모 내지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30대 대기업에 종사하는 여성근로자는 파트타임, 임시직 등 비정규직으로 대부분 2차 노동시장에 고용돼 있었다. 1차 노동시장은 일단 채용이 되면 승진, 임금, 퇴직급여 등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반면 2차 노동시장은 취업과 실업의 경계가 모호하고 수시로 노동조건이 바뀌어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YWCA는 이런 점을 감안해 여성을 사회참여로 유도하기 위한 일인일기(一人一技) 훈련에 끈질기게 치중해왔다. YWCA가 실시한 도배, 타일, 페인트 훈련이 그 예로 1980년부터 YWCA수료생들이 서울시립 부녀복지관과 대양직업훈련소의 교사로 나가 서울의 영세민 부녀자들에게 도배, 타일, 페인트 훈련을 지도해 여성취업을 확대하는 성과를 올렸다. 여성들은 남성 직종으로 구별되던 직종에는 자부심을 갖고 훈련을 받는데 비해 지금까지 여성이 해오던 가사노동과 관련된 직종은 기피하는 현상을 보였다.

한국YWCA연합회에서는 1979년~1989년까지 직업개발 프로그램을 중점사업의 하나로 채택하여 여성의 잠재능력을 개발하고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새 직종을 창출하는데 앞장섰다. 직업개발을 하는 동안 사회제도나 운영상의 장애를 극복하면서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직종, 대상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직종개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였다. 이들의 기대는 생활향상, 주택마련, 자녀교육, 생계비, 자기향상 등 인간의 일차적인 욕구가 73%나 되었다. 직업개발 수혜자의 생활수준은 남편의 직업이 기술직, 생산직, 하위공무원, 판매직에 속하고 교육수준은 고졸이하로 정부의 사회복지보호 서비스 대상기준인 저소득층이 16.3%로 나타났다.

YWCA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실시한 직업훈련 사업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도배, 타일, 페인트 훈련에 이어 1978년 4월~1987년 12월까지 10년간 감귤재배 전정기술, 제도, 목공예, 간판 등 17종에 걸친 직업훈련을 실시하였고 그중 13개 직종을 계속해서 훈련시켰다. 이 기간 동안 5,037명의 훈련생을 길러내고 수료생의 50.5%인 2,544명이 사회에 나가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실시된 직종과 훈련인원, 훈련 후 취업현황은 다음 <표>와 같다.

 

<표> 1978년~1987년 직업훈련 및 취업현황

직업 훈련인원(명) 취업인원(명) 직업 훈련인원(명) 취업인원(명)
도배사 598 518 피부관리사 418 387
파출부 1,989 1,893 기계제도사 52 51
외국인가정 파출부 133 133 판매사 68 61
환자돕는 이 637 619 장신구 디자이너 14 13
호텔미화부 300 270 타일사 140 127
건축설계 제도사 274 274 표구사 102 91
귀금속 세공 187 139 금은방 932 27
요리사 112 109 골동가구 및 목공예 15 15

 

YWCA의 직업개발 사업은 이후 직종의 선호도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였다.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던 파출부 교육은 점차 응모자가 줄어든 대신 환자도우미는 1988년 전년도에 비해 61%가 증가한 549명, 탁아모는 1988년보다 180%나 증가해 9개 지역YWCA에서 3,051명이 신청했다. 그러나 이 교육도 1989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신청자가 27.7% 감소했다. 이런 변화는 가사노동과 관련된 직업보다 좀 더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여성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었다.

직종개발은 주로 저소득·저학력·저숙련 정도를 참고로 이루어졌다. 이에 속한 직종은 온돌놓기, 적(벽돌쌓기), 문유리 베어 맞추어 달기, 조림 또는 나무 전정기술 등이고, 재택보호 서비스로 가정에서 타인의 협조가 필요한 생활유지 서비스분야를 세분화해 장보기, 청소, 개인활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보조하는 산보, 운동 등으로 확대되었다.

도배의 경우는 계속 다른 지역YWCA에서도 요구할만큼 수혜자의 의존도가 높았다. 1986년~1989년까지 울산․대구YWCA에서 도배훈련을 실시했는데, 울산YWCA의 경우 1986년 7월 21일 노동부로부터 훈련을 의뢰받아 3개월간 이론과 실습 등 전 과정을 무료로 가르친 후 수료증을 배부했다. 1차 훈련에서 남은 기금으로 제주YWCA가 1990년에 2회에 걸쳐 도배훈련을 실시했다. 도배사의 인건비는 남성과 동일한 수준이며 페인트, 타일에 비해 훈련기간도 3개월밖에 되지 않고, 비가 올 때나 겨울에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저소득층 기혼여성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했다. 또한 훈련기회, 비용, 내용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공평하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 수혜자는 다른 훈련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 1회성에 끝나지 않고 재훈련의 기회를 가지면서 월례회 모임에서 얻어진 정보를 다음 직업훈련에 반영시켰다.

 

▲ 감귤전정 훈련

제주YWCA는 1979년 지역대표들과 산업분야, 건축분야 지도자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 직업개발을 위한 좌담회’를 갖고 감귤재배 전정기술 훈련에 대한 실태를 파악한 후 1980년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수익률이 보장돼 유망산업에 속한 감귤재배 훈련은 제주 여성들의 인기를 모았다. 제주 여성들은 54%가 바다에 나가거나 농사에 종사하고 그 외 식당, 가정부, 미용, 간호보조 등의 직업을 갖고 있었으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다가 감귤재배훈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감귤 전정 작업은 매년 4~5월로 감귤 전정시기가 되면 농촌진흥청의 도움을 받아 훈련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한된 인원으로 짧은 시기에 제주 전역에 있는 대단위 감귤농가에서 전정 작업을 끝마쳐야만 많은 결실을 거둬들일 수 있는 만큼 감귤전정사의 교육과 수급은 시급한 문제였다. 제주YWCA는 1986년 10월~1989년 5월까지 3년간 EZE(독일 개신교 국제개발사업 본부)의 재정협조를 받아 180명에게 전액 무료로 훈련을 실시했다. 훈련내용은 감귤재배 역사, 생물의 생리, 생태학, 토양관리, 비료, 병충해 관리, 농약과 농기구 다루는 법 등과 산업안전, 산업보존에 관한 상식 등이었다. 매 교육 때마다 저소득층 여성 30명은 3개월간 총450시간을 이수한 후 수료증을 받고 제주도내 감귤농가에서 감귤전정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평균 임금은 일당 1만5천원이던 것이 1989년 2만2천원, 1990년부터 2만5천~3만원까지 받았다. 훈련을 받고난 여성들은 “단지 기술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의 소극적 삶에서 깨어나 인생에서의 새로운 성취에 대한 보람과 의욕을 가질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감귤정전훈련 사진

감귤정전훈련 사진

▲ 피부관리사⦁호텔미화부⦁판매사 훈련

피부관리사는 1981년 대구YWCA가 처음으로 시작했다. 수료생들은 자영업 혹은 피부미용실, 화장품회사의 직원이나 교육강사로 취업되었다. 1992년까지 배출된 인원은 952명. 이 과정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감안, 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피부미용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1983년에 시작한 호텔미화부는 2주 과정의 훈련으로 진행하였다. 1986년 3월에는 노동부지원 실직자전업 촉진훈련을 실시해 영어, 일어를 교육하고 직업관을 심어주었다. 각 호텔 운영자들의 좋은 반응을 받아 1992년 당시 450명이 직업인으로 활동했다.

판매사 3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판매사 훈련은 1984년 12월~1987년까지 실시하다가 일시 중단된 것을 1991년 7월부터 훈련을 재개, 배출인원이 200명이 넘었다.

환자도우미, 요리사, 금․은박 기술교육에 이어 1987년 5월에 새로 시작된 기계제도사는 130명이 교육을 받았다. 기계제도사 훈련은 기계설계사가 현장에서 기계제작을 할 수 있도록 설계도면이나 모델을 기초로 각종 기계, 부품기구, 공구제작에 요구되는 도면을 작성하는 등 2급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1987년 3월부터 시작한 장신구 디자이너 훈련은 1989년 제2회 한국 현대장신구전에 3명, 1991년 다이아몬드 투데이 공모전에 8명, 제3회 한국 현대장신구전에 6명이 입상하고 1992년 9월 홍콩 J.Week 92'에 1명이 입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 국가 기능자격시험 계기된 YWCA 세탁사 훈련

1989년에 시작한 세탁사 훈련은 수료생의 70%가 취업된 후 본격적인 직업훈련으로 정착되었다. 세탁사 훈련은 인력부족난으로 애쓰던 세탁업계에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YWCA가 세탁사 교육을 시작한 이후, 민간에서의 직업훈련 직종을 국가가 자격제로 채택하여 1992년 9월, 국가기능 자격시험이 실시되었다. 국가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제1차 세탁 국가기능사 2급 자격시험에 22명이 응시해 19명(90%)이 합격하고, 1차 시험 합격자에 한해 실시된 2차 시험에서는 19명중 11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세탁사 교육이 시작된 지 3년이 되는 1992년에는 EZE의 교육비 보조로 훈련생들을 무료로 교육할 수 있어서 많은 저소득 여성들이 세탁사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1993년에는 다시 한 번 EZE와 계약해 도배, 감귤전정, 세탁사를 훈련하였다. 이 직업개발사업의 성공은 효율성, 효과성, 공평성, 편익성과 직업에 대한 투철한 직업의식 교육을 시도한 이후 거둔 성공사례였다.

1990년부터 시작된 커튼봉제사는 취업이나 소자본으로 자영업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커튼제작과 봉제제품 제작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훈련을 마친 회원들의 작품전시회를 열고 새로운 디자인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외 산모간호, 열관리 기능사, 보육교사, 속기사를 훈련시키고 1991년부터 메이크업반을 시작했다. 뷰티 메이크업, 윤곽교정법, 신부 메이크업, 색채감각, 이미지 관리를 가르치고 연구반에서는 이론과 실기 및 전문과정을 포함한 특수분장, 무대분장을 지도했다. 배출된 훈련생들은 전문직업인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기도 하였다.

같은 시기에 집안청소와 이삿짐을 돕는 시간제 가정(미화)부 100여명을 배출하고 고학력 주부들의 유휴노동력을 사회에 환원시키면서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한 시간제 주부 아르바이트 활용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기업체와 백화점에 72명을 취업시켰다. 조리사는 출장조리사와 전속조리사로 구분하여 훈련을 하였고 전속조리사는 기업체 식당, 병원 식당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했다. 출장조리사는 YWCA 근로여성회관과 각 구청의 가정복지과에서 실시하는 조리반에서 출장요리사 양성과정을 배워 조리사 자격증을 딴 후, 주문이나 요청을 받으면 출장 나가 일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사회변화에 적응하는 여성인력 양성 위한 직종개발과 직업훈련 실시

YWCA에서는 21세기를 앞두고 직업훈련을 좀 더 새롭고 광범위한 분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도록 노력했다.

▲ 정보화 시대에 따른 컴퓨터 활용 훈련 프로그램 개발

서울YWCA에서는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맞는 직업훈련을 제공하기 위해 1992년 10월 어린이, 주부, 직장인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실시했다. 취미반 3개월, 기능사반 6개월 과정으로 정보처리, 사무자동화, 워드프로세서 등 기능사 시험에 대비한 특강을 실시하여 취업에 필요한 교육을 담당했다. 1993년에는 건축설계제도사, 건축CAD(컴퓨터 이용 디자인), 정원원예사, 애니메이터, 컴퓨터 프로그래머, 전자출판, 텍스타일 디자인, 한복 그림그리기, 가정관리사, 환자⦁ 산모도우미 등을 3, 4개월~6개월 과정으로 지도했다.

YWCA는 1993년 7월4일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 광주, 부산 등 3개 지역에 ‘일하는 여성의 집’을 출범시키면서 단기 직업훈련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미혼여성 수강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IMF이후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 나선 주부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개설강좌의 성격도 많이 달라졌다. 즉 여성 가장으로서의 본격적인 훈련은 물론 양재나 수선 같은 강좌들이 인기를 끌었다.

 

▲ 전문직 취업 희망 여성 위한 강좌 개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애니메이션 제작자, 텍스타일 디자이너, 손해 사정인 등 전문직을 원하는 20대 여성층이 중심을 이루어 강좌들이 더욱 전문화되었다.

또 파출부, 가정(미화)부로 불리던 이들을 ‘도우미’로 전환하였으며, 산모도우미, 가사도우미, 간병사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같은 영어지도자라도 동요나 음악, 스토리를 통해 가르치는 지도자로 나뉘고 비즈공예, 애견옷 봉제 등 생활 강좌가 새롭게 등장했다. 지금까지 배출한 수강생은 1년에 5만~6만명 정도, 직종별로 차이가 나지만 취․창업지원을 통해 취업률 제고에도 힘썼다. 반면 전업주부도 1~3개월 정도 교육을 받으면 도전할 수 있는 틈새 직종들이 개발돼 여성들의 재취업에 도움을 주었다.

간병사는 환자를 직접 돌볼 수 없는 가족들을 도와 병원이나 가정에서 일하도록 한 것인데, 이들은 2주일간 훈련을 받고 가정과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면서 체계화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정해진 서비스 매뉴얼에 따라 환자들을 돌봄으로써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2005년 5월에는 간병사로 활동하는 회원들이 ‘제1회 YWCA 간병사 대회’를 열고 전문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 외에도 YWCA에서는 손해사정인, 판매사, 주택관리사, 산업위생사, 한복 기능사 등의 직종을 개발하고 일정기간 훈련과 학습을 거쳐 자격증을 주어 일하게 하고 있다.

1990년대는 의류, 섬유, 신발 등의 제조업이 위축되면서 생산직에 종사하던 여성취업자가 감소했다. 정규 근로자가 담당해야 하는 직종이나 업종에서는 구직자가 축소되는 현상을 보이는 대신 비정규직인 특정업종에는 인력부족 현상이 생기면서 여성의 직종은 서비스직으로 확대되었다.

▲ 결혼이민 여성 위한 적합 직종개발과 직업훈련 실시

2000년대 이후 국제결혼을 통한 결혼이민 여성의 국내 유입이 증가하면서 이민 초기의 결혼이민 여성의 정착과 지원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한국YWCA는 기업이나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결혼이민 여성과 함께 하는 ‘한하늘 한땅 사업’, 다문화여성 출산지원 사업 등 결혼이민 여성의 한국정착을 위한 언어, 문화교육 등의 학습지원, 출산지원, 고국방문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더불어 결혼이민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특산물 제조사, 의류수선사, 한국어 강사, 생활정착지원상담사, 바리스타 등의 적합 직종을 개발했으며 결혼이민 여성의 직업기초능력 향상을 위한 징검다리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훈련을 통한 취․창업 지원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관련 부처가 다문화여성 정책을 입안하는 근거자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