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서다

억압의 굴레를 떨치고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우뚝 선 두 발

소녀의 집 기숙사생이 빨래를 너는 모습

소녀의 집 기숙사생이 빨래를 너는 모습

 

직업교육의 시작, 소녀의 집

도시여성 복지사업 일환으로 1961년 서울 후암동에 문을 연 '소녀의 집'. 170평 2층 규모의 집에 50명의 여성들이 기거하면서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꽃꽂이, 미용체조, 요리강습, 일어 회화, 영어 회화 등을 공부하였다.

레크리에이션

레크레이션

 

소창 프로그램

YWCA행사에는 노래와 게임 등 소창 프로그램이 포함되었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근로여성들에게 공동체성과 함께 새로운 활기와 희망을 주었다.

파출부 교육 사업

파출부 교육 사업

 

파출부 시험

당시 '식모'로 불리며 한 가정에 속해서 지배당하던 여성들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귀가하는 직업인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YWCA가 처음 '파출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YWCA는 청소법과 세탁법 등을 개발하여 전문교육을 실시하였다.

제20회 Y-틴 전국대회 사진

제20회 Y-틴 전국대회 사진

 

Y-틴 활동

1922년 한국YWCA가 창립될 당시에는 Y-틴과 대학Y가 학생YWCA라는 한 조직으로 활동하다가 1953년에 대학생부와 Y-틴 부로 분리되었다. Y-틴은 영.지체가 자랄 수 있는 활동에 목표를 두고 예배, 봉사, 친교, 체육, 교육 프로그램, 기타 사회운동 및 모금행사 등을 하였다.

1967년 대한YWCA연합회 회관 신축 기공

1967년 대한YWCA연합회 회관 신축 기공

 

한국YWCA 회관 기공식

한국YWCA는 국내외적으로 기금을 모금하여 1967년 명동 1가에 새 회관을 건축하였다. 한국YWCA회관은 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과 재정자립의 기반이 되었다.

여성 직종 개발을 위한 도배 강습

여성 직종 개발을 위한 도배 강습

 

새로운 여성 직종 개발과 훈련

"남자들만 하는 일"로 간주되었던 도배, 타일, 페인트 3개 분야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직종으로 개발, 훈련하고 여성기능대회를 개최하는 등 YWCA는 여성직업개발훈련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당시 같은 직종에서 남성에 비해 4분의 1이었던 여성근로자 임금이 남성과 같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근로여성을 위한 간담회

근로여성을 위한 간담회

 

여성들의 근로조건 개선

근로여성들의 저임금과 복지, 위생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YWCA는 기업체 책임자와의 좌담회를 개최하여 근로여성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1965년 여차장 1천명을 대상으로 숙소와 근로실태를 조조사하여 여론을 환기시키고 근로조건을 개선시켜 나갔다.

1973년 가족법 개정을 촉구하는 강연회

1973년 가족법 개정을 촉구하는 강연회

 

가족법개정운동강연회

남성중심의 호주승계 순위를 규정해 놓은 호주제로 인해 성차별이 만연하고 여성들이 호적과 이름의 성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어, 한국YWCA는 1973년 27개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가족법개정운동을 펼쳤다. 1975년을 "가족법 개정의 해"로 정하고 국회의원에게 편지 1만장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4년 제1회 노동조합 간부훈련

1974년 제1회 노동조합 간부훈련

 

노동조합간부교육

YWCA는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평등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1972년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간학교인 "평화교실"을 시작하였고 노동자들의 의식강화 교육을 실시하였다.